'도넘은 무능에 레드카드'…유럽 포퓰리즘 젖줄은 신뢰잃은 정부

2024-09-06


최근 독일 주의회 선거에서 재확인된 유럽 포퓰리스트 돌풍의 배경에는 이민자 문제와 인플레이션 등 경제난 외에도 기존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 추락이 근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SJ)은 "유럽에서 반체제 포퓰리즘의 부상은 단지 이민자와 경제·안보 우려만으로 촉진된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추세에 의한 것"이라면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정부의 능력에 대한 신뢰 붕괴가 바로 그 근본 원인"이라고 짚었다. 최근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 프랑스, 독일 등 전역에서 극단주의 정파들이 이민자에 대한 반감 등을 부추기며 잇달아 선거에서 약진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 및 정치 전문가들은 극우 정당들이 지적하는 이민자 증가와 인플레이션, 전쟁과 같은 위기 상황은 이전부터 있어 왔던 것들이라고 지적한다.

포퓰리스트 정당의 부상을 도운 것은 이러한 위기 자체가 아니라 기존의 정치권이 이러한 위기를 대처할 수 있다는 신뢰를 유권자들 사이에서 잃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극우 성향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득세하고 있는 독일은 2019년 이후 거의 성장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경제 탓에 국민이 신뢰를 상실한 상태다. 게다가 지난달 3명의 사망자를 낸 흉기 테러의 범인이 지난해 추방되었어야 했지만 당국이 그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 무산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치·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더욱 사라져가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포르자 그룹의 대표 만프레드 귈네르는 이전에는 9·11 테러나 금융위기와 같은 공통의 위기가 발생하면 보통 유권자들이 기존 정권 지지로 뭉치면서 정부에게 유리해졌지만, 최근 유럽의 상황은 이와 반대로 여러 위기가 닥치고 있음에도 정부 지지율은 하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정부 신뢰도 하락은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주 포자 그룹이 발표한 독일 유권자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54%가 어떠한 정당도 현재 독일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올해 초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이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 60%가 정치 기관에 신뢰가 없다고 답했으며, 민주주의가 더 이상 제대로 작용하지 않고 있다고 답한 비율도 이와 같았다.

귈네르 대표는 이러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최근 포퓰리즘 정당의 득세는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더 큰 문제의 '빙산의 일각'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실시된 독일 작센, 튀링겐 주의회 선거에서 아무에게도 투표하지 않고 기권한 유권자 비율은 독일 통일 이후 첫 선거가 실시된 1990년에 비해 각각 26%, 56%가 늘었다고 귈네르 대표는 전했다.

이러한 정치적 무관심은 포퓰리즘 정당의 득세를 도울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하나의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는 분열된 의회 구조를 만들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악순환을 빚어낼 수 있다.

오늘날 유럽 각국 정부들이 이처럼 위기 앞에 무능력해진 배경에는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고 WSJ은 짚었다.

과거보다 많아진 국가 채무는 정부가 경제 위기 앞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 어렵게 만들며, 유럽 전역에서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로 인해 공공 의료와 같은 복지 시스템에는 과부하가 걸리고 있다.

또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법을 제정하거나 정책을 도입하기 위해 거쳐야 할 절차적 관문이 복잡해져 정부가 효율적으로 문제에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포퓰리즘 세력들은 이러한 민주주의 정부의 내재된 약점을 집중 공략하며 급부상하고 있다.

독일의 정치학자 헤르프리트 뮌클레는 "이는 우리가 정치적 타협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면서 "이는 타협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를 대다수 유권자가 요구하도록 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신호는 아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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